가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찾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세탁물에서 나오는 현금과 같이 금전적 도움이 되는 발견도 있지만,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빛바랜 사진이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 나온 예전의 소중한 기록들, 이젠 기억도 안나는 지인에게서 보내진 편지나 오래된 성적표와 같이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쏠쏠한 보물을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Testament 레이블도 이런 발견을 한 것일까? 30년도 더 지난 정경화의 음원을 도대체 어디서, 왜 하필 이제야 끄집어내어 음반으로 낸 것인가?
줄리니의 지휘에 베를린 필의 연주라면 연주의 질이 낮아 이제껏 출반을 보류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73년이라면 완숙미는 조금 떨어지겠지만 정경화의 가장 힘 있는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열정적 시기'임을 감안할 때 이 실황 연주의 음원이 이제껏 창고에 있었던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이왕에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고 이제라도 세상에 선을 보여준 그들의 노력에 감사한다.
정경화의 연주와는 무관한 무소르그시키 Mussorgsky의 커바쉬치나 Khovanshchina 전주곡은 넘어가고, 익숙한 레퍼토리인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의 Violin Concerto D장조 (Op.35)는 이것 말고도 여러 장의 음반을 갖고 있지만 이 앨범이야말로 정경화 특유의 힘찬 보잉과 함께 실황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명반의 출현이다. 줄리니 특유의 완벽주의적 연주와 독주자에 대한 배려도 느낄 수 있다.
수입반임에도 한글 내지가 포함된 리팩키지 형태의 이번 앨범은 30년의 세월을 넘기에는 음질의 한계가 다소 보인다. 하지만 거꾸로 30년의 간극을 생각하면 전혀 불평할 수 없는 음질이기도 하다.
정경화의 팬이라면 당연히 소유해야 한다. 재킷 사진도 멋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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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0.23.
지구 위의 질량이 늘 보존되듯 정경화의 앨범처럼 보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처구니없이 무언가를 잃는 경우가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말인 '상실'이 그런 경우이다. 수명을 다 하거나 해서 미리 예정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경우 그나마 다행인데 그것이 사고인 경우이거나 남의 잘못에 의해 뭔가를 잃어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도 두고두고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포장이사를 하던 분들이 내 결혼식과 아이의 출생부터 유아기를 담아둔 비디오테이프를 모조리 없애 버린 사건이다.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책임을 물은들 어떤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망연자실 순순히 포기해 버린 몇 안 되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나로 인해 누군가의 무언가를 예기치 못한 채 잃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했던 무엇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의미 이상으로 그에게서 추억과 기억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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