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된 '오디오 랙'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저 길쭉한 티 테이블을 이용하거나 지금처럼 다리 없는 나무 선반이나 오석 위에 있는 대로 기기를 올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랙에 들어갈 만큼의 장비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바닥에 쭈욱 늘어놓는 것이 없는 살림에는 오히려 꽤나 운치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디오를 시작한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눈 튀어나올 만큼의 값나가는 기기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AV 쪽을 포함하면 모아진 기기들이 랙 하나 정도는 채울 만큼은 되는 것 같아서 쓸만한 오디오 랙 하나를 장만하기로 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덩치 큰 스피커를 들이면서 일렬로 나란히 올려놀 공간이 없어 CDP를 나무 선반 아래에 매직핵사를 받쳐놓고 거실 앞 쪽으로 빼놓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몇 명 되지는 않지만 가족의 통행에도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용 중인 로봇 청소기-아이로봇-의 진로를 방해해서 청소시 마다 CDP의 측면과 불가피하게 충돌이 일어났다. 또한 스피커의 우퍼 바로 앞에 위치하다 보니 바닥 진동과는 상관없이 우퍼의 공기 흐름을 직접적으로 받는 상황이 되어 CDP 전체를 떨게 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람 부는 서해대교를 지날 때 자동차 차제의 흔들림을 생각하면 딱 맞는 비유겠다.
처음에는 바우하우스의 제품을 생각했다. 가끔 인터넷 상에서 안부를 묻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친분을 나누고 있는 분당의 오디오 파일인 이*훈 씨 댁에 방문했을 때 이 정도면 깔끔하게 정리가 되겠다 싶어 생각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큰 크기여서 이미 설치되어 있는 액자형 스크린을 가리게 되고, 리어 스피커와 빔 프로젝터를 위해 AV 관련 기기들은 거실 뒤편 소파 옆에 구별해 설치한 상황에서 다시 하나의 랙에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은 노릇이었다.
결국 간단히 앰프와 CDP만을 적층할 '소박한' 랙을 구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오디오랙을 제작하는 업체가 많지 않은 데다 '매직헥사'에 이미 좋은 인상이 있어 '아고라 어쿠스틱스'의 2단 랙으로 들였다. 나중에 아날로그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3단 랙을 주문하려다가 아무래도 지금 LP에 뛰어드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다. 색상을 감안해서 앰프나 스피커의 블랙 톤과의 일치를 위해 'SMS'의 스틸 랙을 구입하려다 너무 차갑게 흐르는 경향이 있어 랙 정도는 목재여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결정한 것이다.
두랄루민 소재의 기둥과 스파이크에 체결된 2단의 선반이다. 중국에서 제작한 나무 선반 자체에 다소 흠집이 있었지만 기기로 가려 보이지 않는 부분이니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조립을 해서 기기를 세팅해보니 진공관 앰프의 열기가 빠져나갈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고- 이 공간은 필요할 때 선반 하나를 추가로 구입하여 3단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금빛 CDP와도 적당히 어울려서 나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무슨 '마'가 끼었는지 요샌 제품을 구입할 때 마다 '브랜드 마크'가 빠져서 배달된다. 스피커를 들일 때도 한 쪽의 칼라스 마크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직접 받아다 붙였는데, 이번에도 '아고라 어쿠스틱스'의 금장 로고 마크가 없다. 이게 뽀대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것인데. 아쉽다. 제조사에 연락해 따로 받기로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마크가 붙은 사진은 나중에 올리기로 한다.
※ 추가 : 본문의 글을 올린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깐 '아고라어쿠스틱스'의 사장님과 통화한 그 다음 날 양면테이프로 부착할 수 있는 로고 마크가 택배로 도착했다. 택배까지 이용하기에는 너무 작은 크기여서인지는 모르지만 20여 장의 CD를 거치할 수 있는 거치대를 함께 보내주셨다. 고마운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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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0.14.
본문의 랙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잠깐 언급했듯 중간에 남는 공간이 있어 선반 하나만 별도 주문해 지금은 3단 랙으로 사용 중이다. 그나마 미래를 내다보고 구입한 몇 안 되는 물건으로 오래 사용 중이다. 이젠 낡아서 나무에 입혀놓은 코팅도 벗겨지고 겉에선 안 보이지만 기기들을 넣고 빼는 동안 생긴 스파이크 자국들로 이런저런 흠집들도 나이테처럼 가득하다.
확실히 나이가 들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물건들이 제법 많아 진다. 한마디로 '손때 묻은 것'들로 표현되는 물건들이다. 어제만 해도 카메라는 처분해 이제는 짝이 없는 니콘 스트로보가 다른 물건을 찾다 장롱 속에서 나왔다. 이것도 족히 10년은 넘은 물건인데 넣어둔 배터리 액도 안 터지고 멀쩡히 누워 있었다. 오후에는 유리창 닦이용 스퀴저를 찾다 베란다 상자 안에서 아내의 오래된 필라 볼링화가 나왔다. 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고 마침 볼링을 다시 시작할 생각으로 장비를 구하는 중이였는데 정말 기막힌 20여 년 만의 조우였다. 제법 멀쩡해 보였던 외관과는 달리 세월과 함께 내피가 삭아버려서 가루가 되는 상황이라 폐기하는 쪽으로 결정되었지만 실로 오랫동안 미라처럼 누워있다 다시 빛을 본 경우다.
딸아이의 결혼식이 목전이라 예전 인연들을 우연이든 필연이든 기회를 빌어 소환하는 일을 몇주간 진행했다. 피차 생존을 확인할 길도 없이 연락 없이 지내던 사이. 길게는 몇십 년 만에 연락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시간을 공유했던 이유 때문인지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 생각나는 대로 추억을 되씹어보는 짧은 안부들이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다들 사느라 바삐 넘어가 생략되어 버린 긴긴 시간의 벽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 같았고 그냥 좋았다.
이제 좀 귀찮아도 가끔 명절을 핑계로 톡이라도 넣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다. 오래된 니콘 스트로보나 필라 볼링화 처럼 그들에게도 즐거운 추억으로 불쑥 황색 신호등 마냥 나타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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