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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09.11.8.]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좀 많이 샀다(2)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1. 4.

지난 한 달 동안 읽어내려 소비한 하루키의 책 9권 모두가 바닥이 났다. 

'신의 물방울'이나 '미스터 초밥왕'같은 만화 시리즈물이 아닌 소설에 빠져서, 그것도 단일 작가의 책을 한 주에 두 권 꼴로 읽어 내려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등학교 때 성경에 몰두해서 성경 66권을 몇 달에 '독파'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책에 빠져 지낸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퇴근하는 길에 다시 그의 책 8권을 추가로 구입했다. 밥 값 이외의 용돈 대부분을 음반이나 책에 지출해 왔지만 최근 책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 가을이 원인이겠지.

중간에 끼어 있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내 아내의 책이다.^^

덕택에 하루키가 집필한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기로 했던 독서의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지만 어느 것부터 시작하더라도 그의 독특한 문체와 구성을 맛보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른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발단이 되기도 해서 어느 것의 끝이 또 다른 어느 것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복잡계'인 그의 소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의 글은 무엇하나 뚜렷한 결말을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않는다. 때론 그냥 다음 책에서 또 그다음 책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지만 매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무언가를 스스로 알아내도록 강요하지도 않으면서도 참 많은 의문과 상상의 여지를 허락하는 그의 글들을 통해서 잠시 무뎌졌던 '사고思考의 순수'를 깨워갈 뿐이다. 

기괴한 소재의 단편집 'TV피플'로 '하루키 시즌2'를 시작한다. 

이미 '상실의 시대'에서 맛본 것이지만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의 그의 글들에서 보다 폭넓은 확장성을 경험하게 된다. '나'라는 제한된 울타리에서 보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조금은 더 편리한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레퀴엠'을 듣기에 좋은 가을 밤 - 진공관 앰프의 열기가 보다 따뜻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서늘한 저녁 - 하루키가 바다 너머에서 보내오는 글의 유희에 잠시 시간을 소비해도 아깝지 않을 계절이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4.11.4.

 

굳이 연결하자면 더 오래된 아래글에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2009.9.22.]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좀 많이 샀다

'1Q84'에서 삘을 받은 후 완전히 '하루키'에게 시쳇말로 꽂혔다.잘 된 번역 탓이겠지만 그의 문체가 마음에 든다.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본 간결한 문장들. 때론 몽환적이지만 '사실'을 비켜가려

aladdin-today.tistory.com

 

세월이 흘렀고 내 아이디와 동일한 이름의 중고서점에다 그 사이 몇 번 서가를 정리했는데도 하루키의 책은 여전히 책장에 건재하다.

 

당시는 십여년간 교육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시작된 이런저런 목적이 있는 직업적 책 읽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죄다 경제, 경영, 리더십, 자기 계발 뭐 이런 주제의 책들 뿐이었는데 모처럼 이에서 벗어나 문학적 즐거움을 향유했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연도와 연결된 숫자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글을 보면서 '이런 일을 하던 때' 정도로 추억한다. 국사 연도표 외우듯 "맞아 19**년엔 어디에 갔었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게 추었던 제주도 갔던 해"로 생각하는 것 말이다. 더럽게 추었던 해가 몇 년도인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다 기억력 탓이다. 아침에도 출근하면서 전날 오후에 세워둔 주차 위치를 기억 못 해 지하 1,2층을 오갔다.

 

시어버린 기억력이지만 15년 전에 쓴 하루키 관련 글을 옮기다 보니 불현듯 절반쯤 읽다 만 책이 생각난다. 딸아이가 구매 후 다 읽은 것인지 방치되었던 23년 9월에 출간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아이의 결혼준비를 핑계 삼아 읽다 말았다. 분가하면서 알차게 싸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신혼집이 좁아 어지간한 것은 놓고 갔으니 어디 있을 거다-찾아서 다시 이어나가야겠다. 

 

이젠 뭘 읽어도 기억을 못 해 한참 후 돌아오면 처음 읽는 느낌이 든다. 남겨진 하루키의 20여 권의 책으로 아마로 그래서 평생 그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무슨 책을 읽어도 비슷한 소재와 내용이라 스무 권 보다 더 적은 책으로도 무한 반복 읽기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가을이다. 잃어버리는 기억을 조금이나마 다시 채워 놓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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