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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09.11.12.] 미실을 통해 고현정을 다시 보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1. 5.

TV 그것도 드라마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최고 시청률이라는 '선덕여왕'을 봤다. 벌써 50회. 반년을 진행한 드라마를 이제야 보기 시작한 것은 장안의 화제이기도 하지만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 그녀 때문이다.

국사에 '유독' 약한 '나'이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당시 '신라'라는 시대가 요즘의 가치관으로는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를 '신국 神國'이라 부르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성골/진골이라는 골품제가 그렇고, 여왕이 등장하는 모계 사회가 공존하는 것도 그렇고, 지금 보면 콩가루라고 생각될 정도로 근친 간 결혼과 문란한 성풍속이 통용되었으며 '화랑'이라는 조직 역시 그다지 충성심으로만 뭉쳐진 '거룩한' 조직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신라이다.      

'미실'은 '화랑세기'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화랑세기' 자체가 역사서라기보다는 소설로 치부하는 시각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이라는 전제하에 화랑의 전신인 '원화 源花' 이자 일종의 '무녀巫女'였으며 몇 대에 걸쳐 왕을 '性的'으로 모셨고-그것이 무녀의 한 역할이기도 했으리라-수많은 '정인 情人'을 가졌던 남성 편력의 상징인 '미실'과 드라마 '선덕여왕'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역시 고현정의 괄목하게 성장한 연기력 때문일 것이다.

'모래시계' 이후 그다지 주목 받을만한 작품도 별로없었고 결혼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실제로 그녀는 연기력으로 승부한다고 보긴 어려웠던 배우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혼'이라는 상처가 배우로서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되었을지 추정하기 어렵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브라운관에 나타났다.   

보톡스 연기라고 연기 '외적인' 면을 평가하곤 하지만, 놀라울 정도 다양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발음의 정확성 역시 엄청나게 개선되었으며 미실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독특한 '억양'은 단연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것이 더빙되어 일본 TV로 방영되나 본데 가장 지적받는 것이 바로 이 고현정의 '억양'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차라리 자막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백제 접경지대에서 미실을 구하러 오던 국경의 군대를 '신라가 없으면 미실도 없다'며 회군을 명령하고 분연히 죽음을 택하는 미실을 보면서 이 시대의 매국노를 다시 생각한다. 어찌 되어 건 방송국 스스로도 마지막 '죽음'의 장면 까지도 고현정을 '살려주고' 있다는 의혹을 버리기 어렵지만 그게 시장의 법칙이다. 

이제 고현정은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앞으로 12회 정도가 더 남았다던데 과연 '덕만이'가 얼마나 시청률을 수성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유치원생 같은 얼굴로 큰 눈동자만 좌우로 움직일 줄 아는 '요원이' 아줌마가 왜 이리 걱정이 되는지ㅠ.ㅠ;


작가의 몫이었지만 멋진 대사를 맛스럽게 소화한 고현정, 미실의 어록을 정리한다.  

-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딱 2가지 밖에 없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 "무서우냐? 공포를 극복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 "지킬 수 없는 날에 후퇴하면 되고, 후퇴할 수 없는 날엔 항복하면 되고, 항복할 수 없는 날, 그날 죽으면 그만이다."

- "그래도 웃지는 말거라. 살짝 입꼬리만 올려. 그래야 더 강해 보인다."

- "사람을 얻으려면 먼저 강함을 보인 후 다가가서 손을 잡아야 한다."

- "하늘을 이용하나, 하늘을 경외치 않는다. 세상의 비정함을 아나,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는다. 사람을 살피고 다스리나,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다."

-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하셨습니까? 사람을 얻는 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 하셨습니까? 내 사람들이옵니다. 폐하 보시옵소서! 폐하가 아닌, 나 미실의 사람들이옵니다. 또한, 이제 미실의 시대이옵니다."

-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을 버거워하며 소통을 귀찮아하고 자유를 주면 망설인다."

- "사랑을 믿느냐? 사랑이라는 것은...... 남김없이 빼앗는 것이다."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정의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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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1.5.

 

본문의 글을 버릴지 이곳으로 가져올지 아침에 조금 망설였다.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당시 '미실과 고현정' 이야기를 옮겨봐야 드라마를 못 본 혹은 안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나의 글에 공감할 부분이 별로 없을 것이란 우려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OTT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된 시절이 아니었고 여전히 TV 쪽에 무게중심이 있다 보니 성공한 TV드라마 한 편의 무게감이 대단했다. 반년 이상을 시청자를 TV 앞에 잡아두었으니 당시 화제작을 추억할 누군가 하나쯤은 혹시 있을 것이란 생각에 기록용으로 살리기로 했다. 

 

하루키의 소설에 심취해 문학적 영감이 충만했던 시기여서인지 몰라도 무엇보다 그 시절에 쓴 글들이 블로그용 글 치고는 유난히 장문의 글들이 많다. 그래서 더 버릴 수가 없었다. 고현정의 열연을 버리는 것도 아까운 노릇이지만 저 글을 쓰려고 모르긴 해도 꽤나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한 번에 쭈욱 써 내려간 것 같아 보여도 전날부터 머릿속은 늘 글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스토리 라인을 잡는데 적지 않은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런 짓을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당시 얼마간의 노력이 들어있을 것을 알기에 더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간 버려버린 글들마다 그런 노력이 없는 것이 있었겠냐만 어찌 되었건 이 글은 남겼다. 

 

연말이 다가오고 뭔가를 정리할 시기가 목전이다. 버릴 것과 남길 것, 다시 시작할 것과 포기할 것을 결정할 선택의 시기이기도 하다. 남겨진 시간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때문에 그런 선택이 늘 쫄깃하기 마련이지만 아직 버릴 것과 포기할 것이 남았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이미 갖은것과 이루려는 도전이 있었다는 말이니.

 

오늘도 다들 좋은 '선택'들을 이어가는 하루들 되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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