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은 이런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서 신진대사 패턴을 변화시킨다. 칼로리 이용을 방어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시킨다. 곰이나 파충류 같은 녀석들은 아예 '동면'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한겨울을 넘긴다.
물론 이런 겨울나기 방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나무와 같은 경우엔 더 이상의 광합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내핍'을 겪어야만 하고 곰의 경우에도 미리 한 계절을 날만한 피하지방을 축적하는 수고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놓아야 한다.
사람 역시 가을철이 되면 대게 식성이 좋아지는 이유가 다 미리 겨울을 넘길 에너지원을 저장하려는 본능에 의한 것이리라. 따라서 겨울철은 이런 '비축'과 체온유지를 위한 에너지 '배출'이 활성화되는 시기라 어느 때보다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 조절-늘리는 방향이건 줄이는 방향이건-에 좋은 시기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활동량이 줄고 게을러지는' 시기라 꾸준히 운동에 매진하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연말로 갈수록 갖가지 행사와 모임에다 해마저 짧아지기 때문에 하루 한 시간을 온전히 운동에 투자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헬스장을 찾는데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을 내고 있다. - 그래 봐야 일주일에 두세 번이지만.
사실 헬스장에서 보내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마냥 재미 있다고만 할 수도 없다. 여러 사람이 함께 팀을 이루어 경쟁하는 경기도 아니고, 그저 무겁고 차가운 쇳덩어리와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고통에 스스로를 내어 맡기고 보내는 시간은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게다가 파열된 근육들에서 느끼는 불쾌함은 한 시간의 운동량에 비해 운동 후 며칠간이나 지속되는 불평등까지 있다. 그러니 재미있는 소일거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이병헌이나 비처럼 몸이 어떻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그런 '고통'을 즐기기 시작했다. '변태'가 된 것일까?
고3 때. 몸서리치게 지겹고 지루한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끝내고 찬바람을 맞으며 귀가할 때의 그 느낌 그대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느낌이다. 고통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어 냈을 때의 쾌감이랄까?
누구 하나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새로 온 코치 한 명이 상투적으로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빼면 몇 명과 나누는 목례만으로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과 버둥거리다 모처럼 고립되는 시간이다. 제법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철저히 자신에게 매몰될 수 있는 환경이 이곳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의 몸을 쇳덩어리로 조각해 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번잡함이 정리될 정도니까.
'몸짱'이 되겠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물론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아니다-그저 나의 계획을 나의 의지에 의해서 '완결'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오늘도 하루를 '헬스장'에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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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1.7.
본문의 그날처럼 오늘도 추워졌다. 입동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는 듯.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15년 후의 요즘도 깨작깨작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운동을 한다. 본문에 적은 겨울이 주는 이점 때문은 아니고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혼주몸매(?) 만들기를 위해 먹는 것도 조금 줄이고 웨이트에 집중할 땐 근손실 우려 때문에 안 하던 유산소도 꾸준히 했다. 덕분에 맞춤양복을 준비했음에도 정작 예식 당일엔 허리가 헐렁해져 허리띠를 더 조여야 했다.
하지만 이젠 제목처럼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을 찾진 않는다.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 출입이 쉽지 않은 시절 말미에 아예 방 하나를 홈짐으로 꾸몄다. 비록 조악한 중국산 철제 기구들이지만 그럭저럭 내 몸 하나 버티며 운동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사이클용 스마트 로라 머신이 함께 있어서 즈위프트(ZWIFT)를 즐기며 유산소 운동을 실내에서 할 수 있다.
사실 헬스장 가는데 제일 걸림돌은 옷 챙겨 입고 현관 문턱을 넘어서는 일인데 그걸 생략할 수 있으니 위에 적은 이점을 다 누리면서도 번거로운 일체의 것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평일엔 그 한 시간을 투자하기가 만만치 않으니 아무래도 목적의식이 결여된 탓이다.
하루 중 토막을 내 조금씩 하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주말에 집중하는 운동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하는 시늉이라도 매일 하는 게 더 필요한 시기다. 동면을 방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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