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올해 당신의 음반 구입 트렌드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 한다면 단연코 '박스 세트'가 될 것 같다.
장 당 저렴한 단가에 혹해서 목돈임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지만 이후론 선뜻 손길이 자주 미치지 않아 결국엔 별 실속 없이 자리만 차지하게 되는 게 박스 세트의 운명인데 올 해는 무슨 일인지 유독 여러 박스가 집에 들어왔다. 다행인 것은 올해 구입한 녀석들은 모두 자주 듣는 음반 리스트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마지막 박스 세트로 소개하는 음반은 <아르모니아 문디 Harmonia mundi>가 50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종교 음악 모음집인 'SACRED MVSIC'이다.
사실 지난번에 풍월당에 들러 구입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글을 써 포스팅을 하게 된다.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아직 시장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 사실 '한정판'이라는 제작사의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이니 아직은 구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아르모니아 문디 Harmonia mundi>가 한다면 하는 '성질'이 좀 있는 레이블이니 이왕 살 생각이 있으면 서두르기 바란다.
이 박스의 이름을 옮겨 적는데 한참을 고민했다. Music도 아니고 MVSIC은 또 뭥미? 오타일까. 하지만 이런 대형 레이블에서 그럴 리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라틴어 고어에는 'U'가 없었고, 대신 'v'가 요즈음의 'U'와 'V'의 중간 음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예를 들면 고대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는 'AVGVSTVS'로, 'sanctus'는 'SANCTVS'로 기재했으며 소문자도 없었단다. 명품 브랜드 '불가리'도 그래서 이따구로-BVLGARI- 쓰게 된 거다. 그래서 나도 대문자로 'SACRED MVSIC'라 적는다.
유럽에서는 종교와 관련해서는 계속 라틴어를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앨범이 종교 음악인만큼 <아르모니아 문디 Harmonia mundi> 역시 라틴어로 폼을 잡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문디 자슥~^^
30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는 -그중 한 장은 가사 등 CD 정보를 수록한 PDF를 담고 있는 데이터 CD이니 정확히는 29장의 음반이다-이 박스 세트는 호불호가 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음악 그것도 특히 종교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박스는 그야말로 '대박'에 해당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밤에 들으면 '귀신 나올 음악' 정도로 치부할 것이니 말이다. - 종교 음악이니 귀신 나올 음악이란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특히 나처럼 '레퀴엠'을 좋아하는 경우 모차르트, 브람스, 포레로 이어지는 레퀴엠 CD 세 장 만으로도 본전은 다 뽑은 셈이다.
<아르모니아 문디 Harmonia mundi>의 트레이드 마크인 깔끔한 음질 지향의 녹음은 이 박스 번들에서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적어도 가지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의 값어치를 100% 뽑아낼 음원이다. 게다가 르네 야콥스, 윌리엄 크리스티, 필립 헤레베헤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최정상 고음악 전문 지휘자들의 앨범이 그득하니 8만 원 내외로 판매되는 이 박스를 물리칠 방도가 없는 이유이다.
기독교-가톨릭이 더 정확하겠다-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음악들이지만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성'이 주는 '정화'의 정수를 맛보길 감히 추천드린다. 게다가 이 계절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30장의 CD재킷을 모두 펼치면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 장의 그림이 나오는데 심심하면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4.11.6.
박스세트냐 아니냐 와 상관없이 CD를 넣고 음악을 들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특히 요즘 들어선 음악을 듣는 시간 자체가 소멸 중이다. 퇴근 후 아내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함께 TV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주말엔 계속 분주한 일정이 반복되면서 날이 서늘해졌는데도 진공관에 불을 땔 기회가 없었다. 귀로 듣기만 하는 것보단 시청이 함께되는 TV콘텐츠의 재미가 중독이 된 셈이다.
한동안 이런 음악감상의 휴지기를 거치고 불현듯 무슨 감흥이 생겨 앰프를 다시 켜보면 대개 무슨 사단이 생기는 것을 몇 차례 경험했다. 모든 기계류들이 그렇지만 과도하게 쓰는 쪽 보단 오히려 오랫동안 가동없이 놀려두는 게 더 대미지를 주는 경우가 있다. 앰프 쪽도 볼륨의 접점이 무뎌졌다든지 진공관 잡음이 생긴다든지 케이블류 들의 접촉이 불안정해진다든지 뭐 그런 일이 모처럼 음악을 들으려는 결심을 다시 돌려놓은 경험이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수리와 정비에 시간과 비용이 제법 들어간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같이 늙어가는 스피커의 입을 좀 열어줘야 하는데 묵언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제발 이번엔 아무 일 없이 복귀가 성공하길.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취미하다 가랑이 찢기 > 오디오 음악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1.3.] 진공관 인티 '판테온 3'를 'Mk3.2'로 업그레이드 (27) | 2024.11.26 |
---|---|
[2009.11.26.] 오늘의 음반 - 무라지 카오리의 'Portraits' (16) | 2024.11.20 |
[2009.10.29] 오늘의 음반 - 편안한 바이올린, '조슈아 벨과 친구들' (3) | 2024.10.30 |
[2009.10.27] 노느니 꼼지락거리기(5)-케이블 조금 바꿔보기 (3) | 2024.10.28 |
[2009.10.22] 오늘의 음반- 정경화 Mussorgsky : Khovanshchina /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1)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