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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9.11.26.] 오늘의 음반 - 무라지 카오리의 'Portraits'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1. 20.

'기타 Guitar'는 흔하지만 클래식계에선 그리 크게 자리매김되지 않은 악기다. 기본적으로 적은 음량으로 인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은 아예 기대하고 어려운 그저 그런 독주 악기로 치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악기 이름에 '클래식'이 붙은 거의 유일한 악기임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리코더와 함께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악기인 '기타'로  활발한 활동을 갖고 있는 일본 여성 연주가인 '무라지 카오리'의 새 앨범을 오늘 추천한다. 동양인, 일본인, 여성...... 쉽게 있을 법한 편견을 이겨내고 당당히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린 '미모의 젊은 기타리스트'. 그녀에게 붙는 수식어다.


지난 11월 22일(일)에 있었던 예술의 전당 내한 공연을 앞두고 발매한 이 앨범은 특정 장르에 국한된 기타곡이 아니다. 쇼팽이나 슈만 같은 클래식 넘버에서부터 비틀즈와 에릭 클렙튼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기타로 표현 가능한 모든 영역을 담고 있다. 기타의 바디를 퍼커션처럼 두드려 표현하는 주법 역시 일품이다.

 

하지만 클래식 기타로 연주되는 에릭 클렙튼의 'Tears in Heaven'등의 경우 원곡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아들을 잃은 상처 속에 에릭 클렙튼이 포크 기타로 현을 튕겨낼 때와는 달리 힘도 부족하고 보컬과 어우러지는 끈적함도 없지만 그녀 나름의 아기자기한 해석으로 연주되는 곡들에 나름의 매력이 있다.

다섯 번 째 내한 공연이 된 이번 공연도 리처드 용재 오닐과의 협연으로 제법 입에 오르면서 성황리에 미쳤다한다. 비올라 소리가 기타와 꽤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인데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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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1..20.

 

가을이 푹 익다 못해 겨울을 맛 보여주는 요즘 같은 계절만큼 기타가 어울리는 계절도 없다. 첼로가 먼저 생각나긴 하고 서늘한 현의 깨발랄한 튕김을 생각하면 여름철이 더 제격 같기도 한데 포크나 일렉이 아닌 클래식기타는 이때가 더 좋아 보인다.

 

고3 때였던가? 미대를 준비하던 짝꿍이 있었다. 그의 취미가 일렉 기타였는데 쉬는 시간마다 TAB 악보를 꺼내 운지 시늉을 해 가며 지판 연습을 했다. 이런 악보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 봤다. 그의 집에서 넥이 휘어버린 통기타와 표지도 다 떨어져나간 대중가요 악보책을 빌려 처음 잡아본 것이 기타와의 첫 대면이었고 지금까지 어쩌다 한 번 심심풀이용이자 그리고 유일한 나의 악기가 되어 있다. 아! 하모니카가 하나 더 있긴 한데 이 역시도 기타와 함께 목에 걸고 연주하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봉숭아'를 위해 연습하던 거라 내게는 리코더 같은 거다.

 

10여 년 전 핑거스타일 기타의 붐과 함께 들인 체코 Fruch 기타-미국에선 Stonebridge란 이름으로 출시된다-가 아내의 새로운 반려 피아노 '카와이 Kawai' 옆에 얌전히 서 있다. 거실을 오다가다 갑자기 생각나면 미친 듯 몇 곡 스트럼하거나 일 년에 한두 번 녹이 난 기타 줄을 교환하는 게 전부인 상태이지만 그냥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여름이 홀연히 사라지자마자 얼굴을 디미는 겨울이 그다지 낯설지 않듯 뜬금없는 기타 친구를 찾아봐야 할 때인가 보다. 왼손가락의 굳은살이 없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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