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늘 곁에 두고 그것을 생업으로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오디오 판매상'이나 한 걸음 더 나가서 그것을 만드는 '오디오 메이커'들이 그럴 것이다로 바뀌고 있다. 판매상은 판매상 나름대로 좋아하는 기기들을 들어보고 권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 '메이커'라면 자신만의 소리결을 구현할 수 있을 테니 더할 나위가 무엇이 있겠는가?
며칠 전 울진에서 세밑 휴가를 보낼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일로 부러워하는 국내 오디오 메이커 중의 한 명인 'Tone Korea'의 정진수 사장님으로부터다. 오래전부터 개발 중이라는 말은 들었던 '판테온 Mk3' 앰프의 '고정 바이어스장치'의 테스트를 완료했으니 앰프의 업그레이드를 받으러 오라는 반가운 전화였다.
Hum 발생을 잡고 저음의 조절을 위한 한 번의 튜닝을 빼고도 지난 추석 무렵에 대역폭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업그레이드를 받은 적이 있으니 두 번째 공식적인 업그레이드다. '판테온 Mk3.2 버전'쯤 되는 셈이다.
마침 주력 소스인 '마란츠 SACD 11s1'의 픽업을 함께 교체할 겸 드디어 지난 토요일 Tone을 방문했다. Tone의 경우 마란츠와 탄노이의 대리점 겸 수리점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 마란츠 픽업의 경우 직접 부품을 사서 교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제일 싸게 교환할 수 있는 곳이다.-이건 정말 고급 정보인데^^
이번에 추가되는 판테온의 업그레이드는 '고정바이어스 장치'를 개선한 것으로 보인다. 문과생이라 정확한 이론적 배경을 설명할 자신도 없고 메이커로부터도 충분한 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흔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설명하자면 판테온과 같이 진공관에 별도의 독립 전원에서 전압을 걸어주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의 앰프는 출력관 편차에 융통성이 많은 편이지만 정기적으로 바이어스를 조정하지 않으면 출력관의 제 성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반면, 회로상의 동작전류를 통해 전압을 걸어주는 '자기 바이어스 방식'은 출력관의 특성에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페어관 또는 선별관을 사용해야 하지만, 회로 상에서 바이어스 값이 자동으로 조정되므로 바이어스를 수동으로 조정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번에 개발된 장치가 '고정 바이어스 방식'이면서도 '자기 바이어스 방식'처럼 수시로 바이어스 값을 조정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 장치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독립 전원 공급부를 필연적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는데 트랜지스터 정전압 방식에서 진공관 정전압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를 위해 소형 컴퓨터 기판이 좌우로 한 장씩 삽입된다. 이 기판 회로는 특허신청 예정이라 부품이 모두 하늘색의 필름으로 씰링 처리되어 조립되었다.
약 2~3시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이번 '판테온 3.2 버전'의 내가 생각하는 특징은 '정숙성'이다.
진공관 앰프를 사용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의 '험 발생'을 참고 산다는 말과 '이음동의어'인데 이번 작업으로 100%는 아닐지 모르지만 앰프로 인해 발생하는 스피커 잡음이 획기적으로 없어졌다.
전원부의 개선으로 험이 거의 없어졌을 뿐 아니라 크진 않았지만 앰프를 끌 때 스피커에서 나던 '퍽'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반면 스피커를 댐핑 하는 힘은 더욱 좋아져서 높은 볼륨에서도 소리가 일그러지거나 낮은 볼륨에서 잘려 나가는 일 따위는 전혀 없다.
CDP의 픽업을 함께 갈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CDP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정숙성이 좋아지다 보니 디테일이 함께 살아서 무대를 보다 확실히 그려 줄 뿐 아니라, 거칠지 않고 투명하고 곱게 표현한다.
오래간만에 판테온을 처음 들이던 날의 감동으로 돌아가 앰프에 불을 지피고 있다.
Tone에서는 새로운 분리형 진공관 앰프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금의 판테온도 750만 원이라는 무시 못할 가격으로 인상된 것으로 제외하고는 더할 나위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여기에서 어떤 발전이 더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 되지만 끊임없는 발전이 지금 나와의 동시대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 마냥 감격스럽다.
역시 '오디오 메이커'는 그 업황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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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1.26.
그래서인지 자기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취미들이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인기다. 전문 오디오처럼 장인의 영역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취미 수준의 목공이나 도예 같은 류이거나 아니면 넘쳐나는 요리 프로그램 덕에 음식이나 커피 제조 같은 것도 같은 같은 범주에 들 수 있다.
화개장터 아저씨는 익히 그림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으니 알 것이고 솔비나 최민수 같은 뭔가 이쪽에 어울려 보이지 않아 보였던 이들도 그림 그리기에 재주를 드러내고 있다. 창작은 아니지만 나 역시 가끔씩 집안 곳곳의 보수나 공사가 필요할 때 업자를 부를까 말까를 한참 하다 직접 하는 쪽으로 맘먹고 결국엔 완성했을 때-대부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겸한다-의 뿌듯함은 공연한 자신감마저 불러올 정도다.
인류가 창조주의 후예들인 덕에 뭔가 '창작'의 본능이 어쩌면 지금의 문화와 기술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왕이면 뭔가 소모적 활동보다는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취미가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그럼 나같이 꾸역꾸역 매일 하루 몇 장의 글쓰기를 하는 것도 부가적 가치로 인정될 수 있을까? 가치란 측면에선 여러 할 말들이 있겠다. 누군가의 소비를 통해 효용의 크기로 측정될 그런 가치는 아닐지 모르지만 생산자로서의 보람 같은 것도 있을 테니 그런 활동으로 인정해 달라.
어쩌겠는가? 배운 손기술이 없으니 별다른 자본 없이도 타이핑으로 글자나 토해내는 '텍스트 메이커'지만 한 장의 흰 스크린 위에 전에 없던 문장으로 가득 채웠으니 오디오 메이커가 그러하듯 그럭저럭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도 오늘 잠시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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