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벗고 나오더라도 출근하면서 잊으면 안 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사원증, 휴대폰, 지갑.
사원증이 없으면 회사 출입이 안 되니 임시 카드를 만드는 등 아침부터 피곤해진다. 또한 사내 전화를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니 휴대폰이 없으면 하루 종일 업무 관련 전화를 못 받는 일이 생긴다-하긴 이 경우는 좋은 일(?) 일수도 있겠다^^. 게다가 옴니아 휴대폰 안에 후불 교통카드를 이식해 놨기 때문에 출퇴근이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지갑. 현금을 많이 넣어 다니는 일이 없지만 이게 없으면 하루 내내 '힘'이 없어진다. 구겨진 셔츠를 할 수 없이 입고 나온 날과 같다.
그중 한 가지. 오늘은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왔다. 공연히 의기소침해지는 이런 날은 잡아 놓은 약속도 취소하고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기 좋은 날이다. 신용카드 한 장이 있었지만 혹시 몰라 직원에게 돈 만원을 빌려 명동까지 걸었다. 황사가 또 몰려왔는지 아님 바로 비를 터뜨리려 하는지 누런 하늘을 피해 지하상가를 이용해 명동 CGV 지하 영풍문고까지 걸었다.
쓴 커피 한 잔과 베이글 하나. 카페의 재즈음악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원을 이어폰을 통해 듣는다. 그리고 '이외수'를 읽는다. '아불류 시불류 我不流 時不流'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지난 2년여간 트위터를 통해 한 마디씩 던져내던 그의 글이 여기 다 모여 있다. 140글자로 대변되는 트위팅용 단문들을 통해서 그의 자유롭고도 감각적이며 때론 교훈과 풍자가 가득한 '촌철살인'을 마주할 수 있다. 말장난과 언어의 유희를 넘어선 '연금술'에 가까운 그의 글들을 보면서 30년 이상 원고지 칸 채우기를 한 그의 연륜이 과연 허투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백과 그림이 많았지만 4,000원어치 정도의 그의 글을 읽고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와 다시 보니 책 이마에 '이외수의 비상법'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과연 이 책이 말하는 '비상'이 어느 '비상'일지 몹시 궁금하다. '비상법'과 같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조어의 경우엔 한자로 써줘야 의미 전달이 정확할 텐데 의도된 바인지 모르겠다.
非想? 飛上? 非常?...... 설마 砒霜(독약)은 아니겠지?
사족 : 향수가 뿜어진 책 광고용 책갈피 한 장에서 책을 읽는 내내 묘한 분냄새가 나서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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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1.22.
이외수. 시인이자 소설가. 그러면서도 화가였던 그는 천상 작가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문인이었다.
활자로 자신을 남기는 일을 하다 보면 그 글들이 족쇄가 되어 미래의 나를 공격하는 도구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전에 이런저런 스캔들도 많았지만 그의 글과 그림에는 그가 있었다. 적어도 글로서는 닮기 원했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아내가 결혼하며 함께 들고 와서 이제껏 서가에 꽂혀있는 소설 '들개'가 내가 읽은 그의 (제대로 된) 첫 번째 책일 것인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창작물이 어느 순간 그와 함께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때가 그가 말한 '비상'의 때인가? 그는 2022년,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되었다.
결국 그는 그 스스로를 흘려보냄으로 시간을 흐르게 했다.
자꾸만 욕지거리를 흘려 쓴 느낌이 들지만 '아불류 시불류'의 비상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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