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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10.6.3.] 지나치게 친절한 추리소설 <올림픽의 몸값>

by 오늘의 알라딘 2025. 2. 5.

동양이라는 정서적 동질성 때문인지 최근 일본 작가의 글을 자주 대하게 된다. 그래봐야  <용의자 X의 헌신>의 히가시노 게이코, <도쿄타워>의 에쿠니 가오리, 거의 전집을 모두 읽어댄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이지만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한다. '오쿠다 히데오'.

 

잡지 편집자, 기획자, 구성작가, 카피라이터 등 늘 '글' 주변을 맴돌다 97년, 나이 마흔을 넘어서 등단한 그는 이후 내놓는 책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 딸아이용으로 사주고는 정작 나는 무관심했던 <공중그네'> 역시 그의 작품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3년 만에 내놓은 소설이라는 <올림픽의 몸값 (전 2권, 은행나무)>을 요 며칠 동안 탐독했다. 

 

일본 재부흥의 상징으로 전후 채 20년이 되지 않은 1964년 10월 10일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올림픽 시설 경비에 몰두하는 경찰과 정부, 시설 건설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 그 사이에서 소외된 지방민과 부랑인 등 동시대이면서도 엇갈린 삶을 살고 있는 모습들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일자별로 스토리 텔링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88 올림픽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해서 나처럼 올림픽 당시에 자원봉사자-펜싱경기장에서 방송지원을 담당했었다^^-로 일한 사람처럼 조그마한 관련이라도 있었으면 꽤나 강한 동질감을 맛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도 훨씬 넘었구나. 헐~ 

 

서스펜스 소설, 혹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로 분류되어야 할 이 소설을 읽은 나의 느낌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것.  

 

올림픽 개막식을 몸값으로 해서 경찰과 대치하는 도쿄대 대학원생이자 초보 테러리스트인 '시마자키 구니오'. 올림픽 경비 총책임자인 경시감의 아들이자 구니오의 동창생인 방송국 예능 PD '스가 다다시'. 사건의 고비마다 주요한 공을 세워 구니오를 압박하는 경시청 수사 1과 5계의 '오치아이 마사오'.

 

올림픽 개막식을 배경으로 위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시선에서 본 공방이 마치 일기장을 보듯 '일자별'로 전개된다. 

 

일자별로 위에 소개한 서로 다른 주인공들의 시선을 서로 교대하며 글을 풀어가고 있는데  최근 소설의 특징인 장별로 주인공을 바꿔 진행하는 유행을 여기서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요한 특징이자 내가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시간의 흐름'이다. 

 

일자별로 이야기가 흐른다고 했으나 시계열적으로 동일한 흐름으로는 진행하지는 않는다. 사건을 추적하는 주 흐름이 될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장에는 약간 과거로 돌아가 바로 앞장의 사건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궁금함의 여지'를 채 얼마 허락하지 않는다.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입맛이 맞겠으나 극적 반전이나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읽는 이의 상상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이 '서스펜스'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읽는 내내 지나치게 편안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사건 해결 따위의 '추리' 보다는 등장 인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갖게 되는 심리적 긴장과 인물 간 갈등에 집중하여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번역자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과연 작가는 범인-너무 일찍 밝혀진-'시마자키'의 편에 서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 주권 해방 혹은 지방 균형발전 등 그럴듯한 범행의 동기에 반해서 시마자키의 행동은 너무 쉽게 '부조리'에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이너마이트 테러는 그렇다 치더라도 살인과 필로폰 상용 등은 사상적 정당성을 훼손한 것이라 작가의 의도를 짐작키 어려워진다.

 

독특한 진행 방식으로 새로운 느낌을 준 그의 소설을 읽고 난 소회와 몇 가지 의문. 

 

  • 주인공 '시마자키 구니오'가 올림픽 공사 현장으로 뛰어들게 되는 동인이 약하다. 마르크스 전공자로서 형의 죽음을 통해 그의 삶을 체험해 보고자 했다 하나 지나치게 즉흥적이다. 뭐 멀쩡한 됴쿄대생을 올림픽에 연결해야 했으니 할 수 없었겠지만.
  • 경시감은 별채가 폭파되는 날 돌연 아들 '스가 다다시'를 집에서 내쫓는다. 단순 가스화재가 아닌 폭발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언론사에 다니는 아들에게는 비밀로 붙이고 싶었으라고 이해하려 했으나, 이 역시 연예부 PD인 아들에게 내려진 조치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 번역이 일부 매끄럽지 않다. 하루키의 1Q84를 번역한 양윤옥 씨가 맡았기 때문에 상당한 기대가 있었지만 몹시 서두른 인상이다. 한국에선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조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든지 '당선'과 '당첨'을 혼동한다든지 하는 옥에 티들이 자주 보였다.  
  • 주인공 시마자키의 아바타가 된 소설 속 실존 방화범 '소카지로'에 대한 부가적 설명이 불친절하다. 시마자키가 하필 그를 모델로 삼았는지에 대한 연결 고리가 빈약하다. '소카지로'와 '시마자키'와의 갈등 구조등이 함께 대립각을 이루었으면 어땠을까? - 공연한 나의 상상이다. 

 

결국 1964년 10월 10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의 성화대는 폭파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나마 범행이 성공하여 폭파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이 든 건 왜일까? 주인공 '시마자키'에 매료되어 응원하는 마음이 들어서일까? 아님 상대가 '일본'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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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5.

 

책 한 권-정확히는 상하 두 권 인가?-읽고 뭐 이리 길게도 글을 썼을까 싶을 정도로 나름의 인상이 남았던 책이었나 보다.

 

물론 당시는 아니었지만 No Japan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돌아보면 서가에 제일 많은 소설류는 일본 작가들의 것이다. 문화적 이질감이 덜하고 어순이나 번역의 용이성에 기인한 문장 자체의 어색함이 덜하다 보니 번역문학의 한계를 넘기 쉽다.

 

이런 추리소설류에 문학적 깊이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애니메이션에 특화된 그들의 스크립트 구성 방식도 소설의 전개를 이끌어나가기 대단히 주효하다 보니 보다 보면 어느새 책이 늘어있다.

 

그중 단연코 압도적 비율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인데 어제 아침엔 그에 관련한 가짜뉴스 때문에 잠시나마 가슴이 철렁했다. 요 며칠 여러 셀럽들의 사망소식이 줄을 이었다. 오징어 게임 2의 배유 이주실(81), 헬스 유튜버 김웅서(38), 구준엽의 아내 서희원(48) 등이 연이어 부고소식을 알려 마음이 아렸는데 어제 아침 모 게시판에 난데없이 하루키의 사망소식이 올라왔었다. 

게다가 출처가 일본 최대 문예 출판사인 신쇼샤의 공식계정을 흉내 낸 SNS에 올라온 터라 마치 친한 지인의 부고를 들은 것 이상의 충격이었다. '아, 결국 노벨문학상은 못 받고 가시는구나'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의 영향력 정도면 야후재팬 사이트가 뒤집어져야 맞을 텐데 조용하다. 어디에도 관련한 뉴스가 없다. 10여 분도 채 안 되어 가짜뉴스 판정.ㅠ

 

적어도 사람이 죽고 사는 일로는 장난치지 말아야 하는데.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세차해 놓은 차의 운전석 창문에 누군가 가래침을 뱉어 놓았는데 간밤의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어 있다. 생각해 보니 처음도 아닌 듯싶다. 건물 외부와 연결된 주차장 입구 첫 주차공간이라 평소 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 심증은 간다.

 

세상이 여러모로 흉흉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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