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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카메라 사진찍기

[2000.1.31] 라이카 R7사용기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1. 14.

 

라이카에서 랜즈를 빼면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순수한 바디측면에서, 그리고 나와 같은 아마추어 입장에서 본 R7에 대해 말하기로 한다. 라이카의 오랜 역사 가운데 라이카 바디는 랜즈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이다. 솔직히 바디만 놓고 본다면 그 가격에 라이카를 선택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만 라이카 랜즈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악수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마운트 호환이 불가한 업계 관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를 들어 라이카 랜즈를 캐논 바디에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레인지파인더 기종의 초점 맞춤에 자신이 없었으므로 M형은 배제하기로 하자. 하지만 M형은 미러가 없으므로 당연히 미러충격도 없고 구조상 이점으로 보다 나은 랜즈 설계를 보장할 수 있으니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라이카 M랜즈의 진수를 맛볼 것이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R시리즈는 대략 R4에서 R8을 들 수 있다. 물론 동일한 마운트를 채용하고 있으므로 호환성은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중 비교적 단종된 지 최근이거나 현역인 바디로는 R6(.2), R7, R8정도이다. 이중 R6(.2)는 철저한 기계식 바디이다. 니콘 FM2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솔직히 기능만 따지자면 FM2보다 하등 나을 바도 없다. 하지만 이점이 R6(.2)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일관된 동작성능, 지나칠 정도의 확보된 내구성. 사실 일정 수준이상의 포토그래퍼라면 그 외의 기능은 조잡함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 일정 수준에 미달하므로 R6(.2)를 선뜻 선택할 수 없다. 노출계가 있기는 하나 귀찮아서 내장 카메라에 거의 95% 의지하고 그 나미지는 뇌(?)출계를 이용하므로 노출결정의 편리성이 중요하다. 조리개우선이라고 통상 불리는 노출방식이 가장 나에게 적합하지 않나 싶다. 따라서 매뉴얼노출 한 가지밖에 지원하지 않는 R6(.2)는 기계적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제외.

 

그렇다면 선택 가능한 기종은 R7과 R8정도이다. 결론적으론 R7을 선택했으나 그중 최신형인 R8을 선택권 밖으로 밀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그 멋진 외관과 1/8000 셔터속도를 위시한 진보된 성능 등이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R8은 지나치게 바디가 크다. 캐논 EOS1과 F4S의 묵직함에 염증을 느낀 나에게 R8은 그리 다르지 않게 느꼈고 R8의 버그(비록 사소한 것이긴 했지만 가지고 있던 장비를 모두 해 치우고 교환하는 마당에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격차이가 만만치 않다. R7의 경우 단종으로 중고를 구입해야 하는데 한 100만 원 정도면 구입가능했지만 R8의 경우 당시 178만 원 정도이어서(이 글을 쓰는 2000년 1월 말일 현재론 173만 원까지 가격이 다운되었지만) 약 80만 원 정도의 가격차가 있다. 과연 그 정도의 가격차를 인정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명제를 곱씹어보다.

 

결국 랜즈 쪽에 추가투자하기로 결심하고 R7을 구입했다. R7의 외관은 기존의 바디들보다 약간 세로로 길다. 물론 이 차이도 두 대를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해야 겨우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이고 보면 R7이전의 바디들은 모두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셔터는 전자식 셔터를 채용하고 있으므로 그 견고함을 기존의 기계식 바디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터이나 라이카의 셔터막을 가지고 강하니 약하니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일 것 같다.

 

캐논 EOS1 HS에서 R7으로 변경하고 나서 제일 편해진 것이 바디의 무게이다. 전지 무게까지 하면 1.4kg는 족히 될 법한 바디가 절반정도로 줄어들었으니 늘 버릇처럼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나로선 어깨가 훨씬 편안하다. 다만 그로 인해 캐논의 아기자기한 잔재미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따라서 기능면을 두고 사용기를 쓰자면 하나도 쓸 것이 없다. 기능만을 보자면 니콘의 FM2 보다 그리 나은 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작적 측면만을 보자면, 제일 난감한 것이 필름을 넣고 빼기가 심히 불편하다. 캐논의 경우 필름선단을 펼쳐놓고 뒷뚜껑만 닫으면 모든 것이 끝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셔터뭉치와 연결된 필름 스풀의 홈에 간신히 집어넣고는 필름이 휘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뒷뚜껑을 닫는 일련의 작업이 고행에 가까운 일이다. 예전에 캐논의 필름로딩을 보며 "뭐 이리 간단해?"하고 불평하던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나마 여유롭게 풍경 촬영할 때는 다행이나 모델을 세워놓고 필름 교환한답시고 몇 분 동안 꼼지락 거리면 우리 마누라쟁이 모델은 벌써 애 데리고 딴 곳으로 옮긴 후일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단점(제일 불만인 점은) 노출고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피사체가 정중앙에 위치하지 않은 경우 노출고정장치가 있다면 촬영의 편리성은 두 배로 증가된다고 생각된다. 어차피 전자식 셔터를 채용하고 있을 바에야 노출고정 단추하나쯤은 있어도 좋으련만.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 R7을 모종의 방법으로 노출고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카메라를 뜯어봐도 그럴 만한 장치를 찾질 못했다. 혹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방법이 있으시면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시길. 추가적인 단점을 들자면 미러업이 불편하다는 점(릴리즈를 이용하여야만 함)등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의 지혜로 커버가 가능하다고 치고..... 그렇다면 장점?

 

이 부분에서는 회의적이다. 라이카 랜즈를 쓸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내세울 장점이 뭐 있겠는가? 견고한 성능과 노출 신뢰도등을 말할 수 있겠으나 이 정도 가격에 그 정도의 성능도 없다면 도둑놈일 테니 이미 사용자는 그 값을 충분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라이카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서면 그 순간부터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족] 라이카로 전환한 후로는 특별히 필름을 가리지 않고 있으며 동네 현상소를 오히려 주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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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14

 

그나마 본문의 내용 때문에 작성일을 확인했다. 2000년 1월 말.

마지막 SLR생활을 니콘으로 전향하기 직전에 라이카 랜즈들과 함께 했던 R7 바디의 사용기인가 보다.

본문에도 같은 내용이 있지만 바디 쪽에는 빨간딱지의 장점 말고는 딱히 쓸 말이 없는 필름상자일 뿐인데, 꽤 길게 써 놓아서 지우기 아까워 옮긴 것뿐이다. 

 

오직 랜즈를 쓰기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바디.

 

뭐든 곁다리로 붙어 함께 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시너지로 부르든 끼워 팔기로 부르든 커플링으로 묻어서 가는 그런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남들이 '기생충'으로 부르기 전까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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