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11.30.
욕하려면 보질 말아야 하는데 묘한 중독성 때문에 흉보면서도 빼놓지 않고 보는 예능들이 있다. 대부분 나영석 PD의 생산물이다. 자기 복제와 스핀오프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다 고만고만한 내용과 주제를 갖고 비슷한 느낌의 등장인물들을 재활용(?)해서 좋게 보면 '지속경영' 가능한 나영석의 서사를 써 가는 중이다.
이젠 제법 나영석 사단이라고 불릴만한 연예인 라인업까지 갖춰서 '또 쟤야?' 소리가 나와도 이젠 뭐 그게 당연할 정도다.
나영석의 대표작이자 마더소스 역할을 하는 '삼시 세끼'의 프랜차이즈이거나 스핀오프쯤 되는 tvN 예능 '콩콩팥팥'이라는 프로그램이 이제 후반을 달려가고 있다.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김기방이 출연해 어딘지 모를 500여 평의 밭을 이유없이 일구는 프로그램이다.
삼시 세끼가 그나마 직접 키우고 잡은 것으로 세끼를 해결해 나가는 '자급자족'이란 콘셉트라도 있는 반면, '콩콩팥팥'은 이 친구들이 왜 이 밭을 일구고 키운 작물로 뭘 하겠다는지 알려주질 않는다. 심은 걸 한 번 망해먹고 다시 갈아엎는 동안에도 이런 궁금증에 대해 전혀 친절해지지 않았다. 나는 밭을 갈 테니 너희는 닥치고 보라는 식이다.
밥은 동네에서 다 사 먹고, 무한히(?) 제공되는 농경자금으로 구입한 씨를 뿌리고 모종 심고 약 치는 농부 코스프레로 놀다가 겨우 1~2주 만에 한번 내려와 잡초나 뽑다 다시 돌아간다. 멀쩡한 밭에 맥락없는 꽃은 왜 심는지도 당연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유 없이 제5의 출연자가 된 망치형님이란 양반은 역시 이유 없이 유니세프 천사가 되어 아낌없이 그들을 지원한다. 그냥 영락없는 연예인들의 주말농장. ㅎ
뭐 그래도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무해한 인물들이고 유쾌해서 보는 내내 어딘가 밉상스럽진 않아 다행이다.
프로그램 중 먹던 수박씨를 모아 밭에 심는 장면이 나온다. 수박 한 통에도 무수히 박혀있는 씨를 심으면 그냥 수박이 생기나? 과실 작물을 재배해 보기는커녕 크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없는 내게 유일하게 관심을 끄는 내용이었다. 씨를 심었으면 당연히 나와야 맞는 것이겠지만 왠지 수박의 그 생김과 너무 많은 수박씨를 보면 딱히 그런 인과관계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씹다 뱉어 모아놓은 수박씨를 심었을 뿐이데 몇 주 후 수박이 열렸다. 신기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프로그램 제목에 정말 유일하게 부합하는 장면이 이거다.
몇 달 전 이제는 다른 부서로 발령 난 막내 여직원이 내 자리 뒤편 화분에 씨를 두 개 심었다. 딸아이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는데 내 바로 뒤에서 부스럭거리길래 "뭐 하냐?" 했더니만 먹고 난 아보카도 씨를 심는단다. "그게 돼?"
전사에서 유일하게 자유스럽게 자리배치가 된 부서이다 보니 내 자리 바로 뒤의 공용공간과의 구별을 위해 제법 키가 큰 화분들이랑 철제 구조물 등으로 시선이 가려져 있다. 그중 화분 하나에 아보카도를 더부살이로 심은 것인데 역시 신기하게 얼마 되지 않아 싹이 올라오더니 두 줄기가 미친 듯이 자란다. 그 사이 정작 씨를 심은 여직원은 떠나버리고 가까이 앉았다는 이유로 내 반려 식물이 되었다.
몇 달에 걸쳐 거의 1미터 정도를 미친 듯 자라더니 주변 나무들에 기가 눌렸는지 이제 좀 시들하다. 제대로라면 십 미터를 넘게 크는 나무로 성장하겠지만 내게는 그냥 먹다 뱉은 녀석의 재발견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씨가 그러하듯 생김과는 달리 그 안에 숨은 엄청난 가능성이 어쩌다 우연한 '기회'를 만나 나무로, 혹은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그리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어느 아저씨의 반려 식물로도 제법 가치 있는 생이라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의 형편 없음도, 기회 없음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건 씨의 탓이 아니니.
아보카도 심은데 아보카도 난다.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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