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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8.9.5] 오늘의 음반-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세레나타 노투르노'

by 오늘의 알라딘 2024. 2. 13.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 예리한 느낌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리 선호되지 않는다. 서슬 퍼런 종잇장에 손가락이 베이는 고통처럼 기교 가득한 활의 움직임을 귀에 담아두기에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명 연주자라 해도 독주 소나타와 같은 경우엔  감상을 위해 CD를 쉽게 집어들 수가 없다. 기껏해야 날 좋은 대낮에 듣는 오이스트라흐의 고전이나 안네 소피 무터의 모차르트가 전부이다.

취향이 이러하니, '사라 장'을 제외하고 국내 연주자의 바이올린 앨범은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가뭄에 콩이 나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 내 구미에 맞는 앨범을 있어 한 장 추천한다.


국내 중견-70년생으로 알고 있으니 이젠 중견이라 불러도 실례가 아닐 것이다-연주자인 김지연의 신보 '세레나타 노투르노'이다.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녀의 사진이 멋지게 들어간 디지팩 포장의 CD도 마음에 든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만 알고 있었던 시크릿가든의 원곡 '봄의 세레나데'로 시작하는 첫 곡에서 부터 수록된 20곡 모두가 이제까지의 바이올린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려고 하는 것처럼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명징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질 좋은 바이올린 소리가 앨범 제목 그대로 "연인을 위한 밤의 노래"로 적절하다.

함께 협연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모던 앙상블 피카소'와의 호흡과 깔끔한 녹음 역시 이 앨범을 가치있게 만든다.

어차피 수록된 곡 모두 소품에 가까운 익숙한 곡들로 지극히 편안한 리스닝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아야 하니, 연주자의 기교나 실력을 평가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다.

한 밤중에도 들을 수 있는 편안한 바이올린을 발견했다는 것,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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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2.13.
 
나와는 동갑내기가 되는 그녀는 국내외 명망있는 연주자로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본문의 앨범을 구입한 시기였던 2008년은 그녀가 마흔의 목전에 재미동포 의사와 이혼한 바로 그 해였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더 치명적"이라며 이혼을 담담히 풀어간 인터뷰를 보면서 이후 교수로서 연주자로서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의미 없는 '집착'보다는 덜어냄을 택한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의 '집착'이 그녀에게 귀한 선물이 된 경우도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루기에리(Francesco Ruggieri 1630-1698)가 만든 바이올린을 사용한다. 제작자의 활동시기를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루기에리 바이올린들은 모두 300년이 훨씬 넘는 것들이지만 김지연 씨가 구한 바이올린은 놀랍게도 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고 흠이 거의 없는 것이다.
 
바로 전 주인인 노르웨이 사람이 이 바이올린에 심한 애착을 가졌던 나머지, 죽으며 이를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전주인의 관에 같이 넣어서 대락 200년가량 시체와 함께 매장되었던 것으로 1669년 산 바이올린이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한다.
 
애착이든 집착이든 나의 고집스러운 몰두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행운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수백 년을 무덤에 누워 다음 주인을 찾은 노르웨이인의 집념이 조금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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