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렀다.
홈페이지에서 Tone의 약도를 출력해서 적힌 그대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려고 보니 '송파구 오림동'을 아무리 입력해도 그런 동 명칭은 없단다.
'고물 네비 같으니라구!'
르노삼성 순정용품이라는 말만 듣고 장착한 네비가 이 것 저 것 항상 불만이었는데 동네 이름 하나 제대로 입력이 안 될 줄은 물랐다. 다행히 전에 근무하던 잠실 근처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건너편이라 대강의 기억에 의지에 근처까지 달려갔다.
이 동네에 산 지 10년이 넘었다는 어느 아저씨에 의해서 동네 이름이 '오림동'이 아니라 '오금동'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엄한 내비게이션에게 얼마동안 욕을 한 후였다.
하긴 몇 년을 잠실에서 근무했는데 '오림동'이란 동네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오림동은 전남 여수시에 있는 동 이름이다. Tone은 냉큼 수정하시길 바란다.
자그마한 공원 이면 도로 옆의 그냥 그런 건물 지하. 중앙일보 신문 보급소 옆에 '비즈니스 코리아'-Tone의 전 이름-라는 아크릴 간판마저 없었더라면 도저히 찾기 힘든 위치다. 10시 5분.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계단을 청소하고 계셨던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앰프 나무 상자를 지하로 옮겼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하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으리라. 케리어가 소용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저질 체력으로 나무 상자를 포함해 40Kg가 넘었을 무게를 들고 내려가다간 필시 허리가 어찌 되는 사단이 있었을 것이다.
건물 지하를 모두 사용하고 있는 탓에 좁진 않았으나 기기 제작을 위한 드릴링 머신과 선반, 조립 작업대, 시청실과 사무실로 어지럽게 구획된 공간으로 여유롭지는 못한 전형적인 국내 오디오 생산 업체의 빡빡함이 있다. 하지만 탄노이의 여유 있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 청소로 토요일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이 나쁘지 않다.
처음 생각으로는 작업 시간 내내 옆에 붙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어볼 생각이었는데 썩 원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앰프를 맡겨 놓고 오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오후 4시.
작업이 완료된 나의 판테온 Mk3가 시청실의 탄노이에 물려 소리 내고 있었다. 탄노이 특유의 그 소리. 익숙하다. 하지만 다른 환경의 다른 스피커에서의 소리는 별 의미가 없다.
내부 배선을 모두 걷어내고-이 작업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새로운 회로를 구성했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강변 CGV에 들러 그날 개봉한 '내 사랑 내 곁에'를 보았다.
하지원 김명민 주연의 신작. 식상할 수 있는 소재의 루게릭 투병 멜로를 심각하지 않은 시각에서 보려고 애를 쓴 작품이라 평가한다. 그런 이유로 마른 눈물 짜내기에 집중할 여력을 분산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의 평점은 7.8
집에 돌아와서 0.4V가 조금 못되도록 바이어스 전압을 조정한 후 아틀란티스에 물려 늘 듣던 몇 곡을 걸어 보았다. 바뀌었다. 딱히 그것의 첫인상이 꼭 더 좋아졌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앰프를 구입해 왔을 때 이상의 변화다. 어떤 면에서 다행이다. 나름 고생을 하며 오고 갔는데 어찌 변했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면 서운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우선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대역폭이 넓어지고 보다 칼 같은 해상도가 나온다. 무대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그려진다. 진공관 앰프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덕목이다.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저음역이 열리고 고음은 보다 두성에 가까운 발성이다. 아틀란티스의 고음역이 다소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늘 아쉬웠는데 그러함이 없어졌다. 그런 이유로 시스템 전반의 음색이 조금 밝은 쪽으로 성향이 바뀌었다. 막이 한 꺼풀 벗겨진 소리. 딱 그렇다.
반면 저역이 한 단계 더 밑으로 내려가 있어서 조금 과잉으로 들린다. 이제 제대로 몸이 풀린 10인치 우퍼 두 발이 내뿜는 단단한 저역은 과거의 판테온 정도가 듣기 좋았는데 변화된 저역은 너무 많은 양에다 조금은 풀려 있다. 다소 부담될 정도로.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스피커의 댐핑능력이 좋아졌다. 업체로부터 기술적인 출력 스펙을 전해 받진 못해서 출력치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제껏 10시 방향에서 듣던 음량을 9시 이하에서도 충분히 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이 탁월한 앰프였는데 보다 여유로운 스피커 선택에 길을 터 놓았다. ATC같이 제대로 울리기 어렵다는 스피커에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같은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앰프 전원을 내릴 때 최소 볼륨에서도 스피커에서 '퍽'소리가 난다. 전에는 거의 없던 소리였는데 신경이 쓰인다)
결국 인터케이블을 다시 Tone의 것으로 교환했다. 배음이 줄어드는 다소 까칠한 성격의 케이블이라 제외했던 녀석인데 다소 퍼지는 저역을 잡아내는 데는 현재까지 특효가 있다. 내 경우는 늘 인터케이블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결국 Tone의 것은 Tone에게 돌려야 하는가?
앰프의 내부 배선에도 어느 정도 에이징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열릴 판테온의 변화에 기대가 크다.
※ 총평 - 바꿈질에 늘 목마른 오됴쟁이한테는 별 의미 있는 소리겠지만, 지금의 '판테온' 소리에 만족스러운 사용자라면 구태어 업그레이드를 안 받아도 좋겠다. 확실히 변화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진공관 앰프의 색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TR 앰프 쪽으로 나아간 느낌이라 통상 진공관의 찐득함에 호감이 있는 사용자라면 그냥 가던 길을 가더라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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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9.19.
제법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돌아와 처음 맥북을 열었다. 15년 전 9월에 썼던 글을 또 꺼냈다. 그때도 지금처럼 더웠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추석이면 좀 이르긴 했지만 긴팔을 입기 시작했고 분명 아침저녁으론 서늘했었으니.
최근엔 방문한 적이 없지만 진공관 앰프 전문 메이커 TONE Inc.(톤 코리아)는 본문의 약도처럼 아림빌딩 지하에서 지금은 바로 옆 건물 혜암빌딩으로 위치를 옮긴 것 같다. 그 많은 기자재며 와인과 LP가 가득했던 사장님의 취미 소품들을 싸들고 멀리 가기 어려웠을 텐데 안성맞춤의 장소를 잘 구한듯하다.
지금은 회로기판으로 짜인 웨이버사의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니 더 이상 회로를 수작업으로 수정할 경우는 없지만 직접 한 땀 한 땀 납을 녹여가며 회로를 척척 구성하는 기술자를 옆에서 본다는 것은 문돌이 입장에선 꽤나 진기한 기억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가 새로 구성된 부품들 사이를 흘러 스피커로 터져 나오는 데엔 인간의 기술에 대한 경외감이 들 정도다.
오디오의 바꿈질도 그렇지만 이런 식의 조정을 통한 소위 업그레이드를 하면 분명 소리가 달라진다. 다르다는 것이 꼭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다름'을 통해 느끼는 낯섦이 늘 신선하다.
이제 9월 말을 향해가는 정도의 시간이면 가을 향기의 낯섬이 느껴져야 할 텐데 이 여름의 질척거림이 도를 넘는다. 이젠 지겹다 못해 권태로운 이 여름의 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하늘의 납땜 기사들이 전부를 파업을 해 버린 것인지 기후 조정의 업데이트가 이번엔 너무 늦다.
예고된 업데이트가 나올 듯하면서도 안 나올 때 느끼는 조바심이 낯선 가을을 더 신선하게 만들어 주겠지.
그래 며칠만 더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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