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11.18.
'나 혼자 산다'를 필두로 최근 TV를 틀면 나오는 여행프로그램마다 베트남 '달랏'이 나오길래 지난 한 주간 다녀왔다. 동남아 치고는 1,500미터의 고산지대라 사계절 내내 온화한 날씨에다 그들에게도 휴양지(?)라고 하길래 뭔가 기대를 가득하고 갔는데 베트남은 베트남이다. 혹시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짧게 정리.
[항공]
- 직항으론 비엣남과 제주항공 정도가 있다. 5시간 정도를 날아가야 하는데 시차 두 시간 느린 것을 감안하면 로컬 출도착 시간이 두 항공사 모두 애매하다. 제주항공을 이용했는데 오자마자 호텔 1박을 까먹고 돌아오는 날은 잠을 못 자고 공항에서 하루를 넘기는 스케줄이 나온다. 3.5박 6일 뭐 이런 식이다.
- 그럼에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왕복 30만 원 이하로 나오는 저렴한 항공료. 그러니 귀국 편은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돈을 좀 들여서라도 사전 좌석구매를 통해 좀 편안한 자리로 와야 한다. 경험해 보니 이게 은근 꿀팁이다.
- 달랏 리엔크엉 공항은 이전에 어디를 경험했어도 제일 작다. 국제선 게이트는 한 개뿐. 그래도 새벽까지 한국손님 입출국에 맞추어 카페나 매점이 문을 열었다가 보딩시작하면 바로 불을 꺼버린다.
[물가]
- 물가는 확실히 저렴하다.
- 화폐 단위에 익숙해지는데 좀 시간이 걸리지만 뭘 먹어도 가격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다. 하지만 일부 관광지 입장료는 그들의 물가를 감안할 때 고액이다.
- 동전이 없고 모두 지폐라 거스름돈 주고받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화폐 속 인물도 호찌민 주석 한 명으로 동일하다. 그러니 칸칸으로 구별된 전용 지폐 지갑이 필수다. 쿠팡에서 저렴한 거 꼭 사서 가자.
- 팁문화는 없는 곳인데 주면 사양하진 않는다.ㅎ 그들의 최저 시급이 우리 돈 2,000원 정도라 호텔 등의 팁도 이 정도에 맞추어 5만 동(2,500원) 정도면 충분하다.
[날씨]
- 온화한 하지만 좀 더운 날씨. 말 그대로 늘 연평균 20도의 날씨다. 11월 중순은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막바지라 비 때문에 고생은 없었다.
- 하지만 일교차가 좀 있고 자외선이 강하다. 선크림 필수.
- 추천하는 여행 시기는 아예 우리나라의 혹한인 겨울을 피하는 용도로 12~2월. 제대로 된 이국적인 온도의 건기를 즐길 수 있다.
[교통]
- 달랏은 현재 온 동네가 공사판이다. 제법 도시의 수입이 괜찮아진 탓인지 인프라 투자가 많다. 도로포장공사가 많고 12월 꽃축제를 앞두고 정비도 한창이었다. 오토바이를 하루 빌려 탔는데 생지옥을 맛봤다. 매연까지는 각오했는데 공사로 인한 황토 먼지를 함께 먹고 다녔다.
- 게다가 기본적으로 도로에 신호등이란 게 없다. 보행자든 운전자든 눈치껏 건너고 그 사이를 운전한다. 잠시 동안의 역주행도 용인되는 분위기고 애완견을 싣고 나니는 스쿠터나 서너 명이 올라간 오토바이도 흔히 본다. 덕분에 느리긴 해도 어떻게든 교통이 흘러간다. 멈춰 서 있는 경우가 없어서 신호등을 단다고 하면 데모 일어날 듯.
- 대신 딱히 과속이 없다. 아니 못한다.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오토바이와 보행자 때문에 그리고 좁고 꼬부랑 언덕길이 많다 보니 과속 자체를 꿈꾸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런 교통환경에 비해 일주일간 사고 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 신기.
- 빵빵거리는 게 기본 장착이다. 짜증스러웠는데 오토바이를 몰아보니 이해가 됐다. 화를 내거나 겁을 주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네 옆을 지나간다. 조심해라 뭐 이런 용도다. 그러니 급하게 진행방향을 바꾸지 않고 제 갈 길의 라인(?)만 그대로 유지만 하면 알아서 피해 간다.
- 그랩(Grab) 택시가 너무 잘 잡힌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느낌. 오토바이 대여를 빨리 접고 전향한 이유 중 한 가지. 갈 곳을 정해 콜 하면 배정까지 30초면 되고 도착하는데 평균 2~3분이면 서 있는 곳까지 온다. 동네가 크지 않다 보니 대부분 요금은 2~3천 원. 멀리 가면 4~5천 원 정도다. 문화체험(?)을 위한 것 아니면 오토바이는 포기하고 그냥 택시 불러 다니자.
- 공항에서 시내 호텔 오고 가는 것은 현지 로컬택시인 '라도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카카오톡 계정이 있어서 미리 예약하면 정액제로 칼같이 도착한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심야 요금이 12,000원 정도. 응대도 엄청 빠르고 정확하다. 나는 영어로 소통했는데 한글을 사용하면 번역기를 돌려 응대한다고 한다.
[먹거리]
- 태국처럼 향신료 사용이 과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과 잘 맞는다. 고수를 먹을 수 있으면 천국일 수도 있다.
-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베트남 음식이란 것의 가짓수가 제한적이라 좀 길게 여행을 해야 하면 쉽게 질릴 수 있다.
- 시내 요소요소에 의외로 한국식당이 많아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국내와 밥값이 비슷하다. (김밥 4천 원 수준)
- 물은 기본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물티슈 사용 시 비용을 따로 청구한다. 맥주가 저렴해서 물대신 마시는 편이 유리할 수도 있다.
- 야시장이 유명한데 비위생을 각오해야 한다. 검은 비닐봉지에서 나오는 출처 불명의 소시지를 굽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가격을 떠나 굳이 이걸 먹을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관광지]
- 전반적으로 우리네 80년대 이전 수준이다.
- 차라리 자연 그대로 두는 편이 좋을 텐데 유치한 인공 조형물을 만들어 세워 놓느라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곳들이 많다.
- 풍광이 강원도와 유사하고 이국적 기암괴석이나 특이 식물이 별로 없다. 사진에 따로 설명이 없으면 그냥 한여름 대관령 귀퉁이로 착각하기 쉽다. 딱히 관광지라고 찾아가 봐야 풀만 실컷 보거나 어디 민속촌이라고 꾸며 놓은 곳 보는 느낌.
- 그래도 다딴라 폭포(롤러코스터 포함)와 자수 박물관, 항응아 빌라(크레이지 하우스), 린푸억 사원 정도는 기억이 남는 곳.
- 흡연문화 역시 우리네 80년대다. 길빵은 기본이고 카페나 식당에서도 용인된다.
- (요즘은 비수기라) 패키지로 움직이는 버스들을 피하면 생각보다 한국인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 달랏기차역에서 린푸억 사원이 있는 차이맛역까지 오가는 증기기관차-소리만 나는 짭이지만-는 평일에는 오전 9:55에 한 번만 운행한다. 주말에는 대여섯 번 운행한다. 입장료가 있는 역만 구경하고 사원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는데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통신]
- 하루에 5기가가 제공되는 5일짜리 비엣텔 유심(5,700원)을 사용했다. 별도 통화가 되는 로컬 번호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말이 안 통하니 현지번호 따위 필요하지 않다. 국내 통화가 필요하면 카톡통화하면 된다. 빠른 속도와 넉넉한 용량, 무엇보다 로밍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사용했다. 강추.
- 유심은 쿠팡에서 미리 구입해 현지 공항 도착 30분 전쯤 기내에서 교환하고 착륙 후 전원만 다시 켜주면 된다.
- 호텔에선 어차피 와이파이 잡아서 쓰면 된다. 베트남에서도 웨이브로 '나는 솔로' 보고 다 했다.
[총평]
- 저렴한 가격에 한겨울을 피해 해외에서 따뜻한-덥지 않은- 날씨를 즐기다 오고 싶은 사람정도에게 추천.
- 대신 지나친 휴양/관광지란 환상을 버리고 와야 함.
- 매연과 평생 볼 오토바이를 한 번에 다 봐도 되는 너그러운 마음과 고수에 열린 식성, 물갈이와 조금 불편한 위생상태에 내성이 조금 필요.
- 생각보다 모기는 안 보였지만 일주일 동안 대여섯 방은 물렸다.
- 꽤 많은 곳에서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이 시작되었는데 꽤나 진심스러워 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보내면 어떨지? 방문시기를 고른다면 12월 꽃축제와 함께 최적일 듯하다.
- 호텔은 머큐어 리조트와 콜린 호텔을 이용했다. 혹시 궁금한 것은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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