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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10.3.13] SACD는 포기한 봄맞이 소스 교체, 마크레빈슨 39L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2. 9.

가지고 있는 1,500여 장 남짓의 음반들 중에서 SACD는 채 20여 장이 넘지 않을 것이다.-정확히 헤아려 본 적이 없으니 그저 그렇게 추정해 본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들을만한 SACD들이 보통의 레드북 CD보다 거의 두 배나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와 둘 간의 음질상 차이를 그리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막귀(?) 때문에 그간 적극적으로 구입하지 않았다. 또한 주로 젊은 연주자들의 최근 앨범들이 SACD로 출시되는 경향이 많아서 레퍼런스로 삼기에는 연주 자체가 아쉬운 경우도 많았다.

집 인근의 또다른 애호가에게 양도된 SA11s1. 세번째 들이시는거라하니 이 녀석의 진면목을 아시분 일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 동안 내 주력 소스로 마란츠 SACDP인 'SA11s1'이 버텨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나마 마란츠의 기본기 확실한 음질과 속 썩이지 않고 묵묵히 수고한 픽업랜즈, 질리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 덕이다. 와중에 앰프 수리를 위해 다른 곳의 CDP들과 몇 번 물릴 일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SA11s1'의 소리결이 밝고 가벼운 성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앰프까지도 비숫한 성향이라 오래 듣기에는 다소 피곤할 가능성이 많았다.

게다가 국산이긴 하나 앰프나 스피커의 그레이드가 나름 '플래그쉽'이라고 보았을 때 CDP의 '격'이 언제나 낮아 보이는 것이어서 정작 제일 중요할 수 있는 음원의 원천인 '소스'의 바꿈질은 예정된 수순이라 하겠다. 

어차피 몇 장 되지도 않은 SACD앨범을 위해 SACDP를 운용한다는 것이 마뜩지 않은 데다 CD의 앞 날도 풍전등화인 마당에 SACD에 까지 곁눈을 줄 여력은 낭비였다. 이제라도 좀 제대로 된 CDP가 필요했다.

끝까지 'Audia Flight CD-1 Mk2'와 경합을 벌이다 출시(단종)된지 오래된 '마크레빈슨'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해상력은 말 할 것도 없고 일단은 차분한 음색과 뒤로 넓게 펼쳐지는 무대감 때문이라도 마크레빈슨을 결정하기로 했다. 클래식을 주로 듣는 내게는 잘 맞을 것으로 여러 동호인의 추천도 함께 있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대를 감안할 때 일체형 CDP로는 마크의 초기 모델인 '39L' 밖에는 구입 여력이 되질 않는다. 그다음 업그레이드 버전인 '390sl' 모델이 있지만 중고가만 100여만 원 차이가 나는 넘사벽이었다.

상시 전원 인가 방식을 선호하는 마크의 'Standby' 램프. 24시간 대기중!

출시된 지 10년도 더 되었을 싶은 '디지털 소스'를 구입한다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깝지만 정말 우연히-신의 계시라 생각한다- '신동품' 수준의 39L을 샵에서 발견하게 되어 큰 고민 없이 들이게 되었다. 정확히는 미국 기준으로 지난 1996년에 발매된 기종이니 초기모델이라면 14년, 그렇지 않더라도 10년을 향해 달려가는 녀석들이다. 픽업의 상태를 확인할 길이 없으나 구입하기로 마음먹은 녀석의 외관만으로 미루어 볼 때 틀림없이 사용량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객기에 가까운 과감함을 부렸다. 

군데 군데 헐었지만 10여년이 풍상을 가벼이 이겨낸 원박스의 39L의 외부 박스 (마크레빈슨은 과대포장에 가까운 이중 포장을 사용한다)
코포사운드로 정식 수입된 물건이라는 표시^^.  제품의 시리얼 번호가 일치하는 제 박스다.
이런 식으로 이중포장되어 있다. 이 정도면 집어던져도 문제 없겠다.
결국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표준 랙 사이즈 보다 아담한 '검둥이' 하나 뿐이다.
디자인은 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미니멀리즘의 정수.
간지나는 블랙컬러의 메뉴얼과 벽돌 스타일의 강철 리모콘은 여전하다.


어느 호사가가 장식용(?)으로 마크레빈슨 세트를 구입했다가 함께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연이야 어떻든 원박스의 상태마저도 완전한-하지만 10여 년의 세월을 넘을 순 없지만- 보기 드문 '민트급'이다. 매뉴얼상으론 300시간 이상의 Break-In(흔히 우리가 번인이나 에이징이나 부르는) 타임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전 주인이 그 정도라도 사용을 했을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말끔한 녀석이다. 거의 일 년전에 오퍼스 시스너쳐와 함께 잠깐 사용하다 내쳐진 마크레빈슨 '프리앰프 38'이 아직 남아 있었다면 또 어떤 양상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지만, 안방마님 '판테온'에 딱히 불만이 없으니 넘어가야겠다.

기존 마란츠와는 디자인 조화가 영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마크의 경우 '판테온mk3'와 색상도 제법 어울린다.

이제 시스템의 '구성'은 끝났다. 앞으로 스피커 '아틀란티스'를 4 웨이로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자잘한 튜닝은 계속되겠지만 나름-순전히 나만의 생각-하이엔드 초입에 이정표를 세워놓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마크레빈슨'이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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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2.9.

 

요즘 오디오에 입문한 사람들은 마크레빈슨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엔 자동차로 치면 포르셰 정도의 포지셔닝이 있는 브랜드였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처럼 뭔가 대중적이지 못하진 않으면서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넘사벽 초입에 있는 정도였다.

 

그런 브랜드의 CDP였으니 저 날 느꼈던 설렘의 기억은 오늘까지 분명하다. 또한 별도의 DAC로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어쩌면 제대로 된 최초의 DAC를 소유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연식있는 중고제품이 그렇듯 겉만 보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한 기기이기도 했다. 멀쩡한 외모와 달리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CD 트레이가 말썽이었다. SF영화에서나 볼듯하게 트레이가 '슈슝'하고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어느 순간 걸린 듯 동작을 안 했다.

황학동의 장인이란 분한테 수리를 했음에도 여전했고 얼마 되지 않아 린데만으로 교체할 때까지 꽤나 속앓이를 했던 기억이다. 중고가 다 그렇지뭐 하고 넘어가기엔 꽤나 하이리스크가 존재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나온 모든 것은 결국 그 누군가에 의해 길이 들었기 마련이다. 피차 서로에게 익숙해진 무언가가 합의되지 않은 채 어떤 변화 속에 노출되면 생각지 않은 이런저런 사달이 난다. 

 

겨우 민주주의가 익숙해질 만한 시기에 온 나라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 유형의 대통령을 합의되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사소한 차이로 선택하는 바람에 불과 2년 여만에 몇십 년을 퇴보해 버린 지경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새로 들일 때, 과감하되 충분히 생각하자. 두고두고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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