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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카메라 사진찍기

[2000.10.17] 휴대용카메라 LOMO를 받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1. 10.

바로 어제(2000년 10월 16일) 오후 소포로 배달된 로모를 받았다. 전 주인이 비교적 꼼꼼하게 내용물을 챙겨두고 계셨던 탓에 신품으로 구입한 것과 다름없는 패키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케이스를 묶었던 검은 책 철끈까지도 동봉되어 있었으며 케이스를 개봉하려면 불가피하게 제거했어야 할 봉인용 스티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외견상 아무런 하자도 없는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기쁨도 한순간... 로모의 코에 달린 창문(랜즈커버)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뻑뻑함을 떠나 어지간한 힘으로도 꼼작하지 않는다. 겨우 한 번 열기는 했는데 닫으려는 순간 밑의 레버가 툭하고 헐거워져 버리면서 커버는 그냥 그대로다. 큰 사고가 아닐 수 없다. 판매하신 분은 '원래 그렇고 날씨에 따라 더 심하고 덜할 때가 있다고 틀었다'는데, 믿기 어렵다. 아마도 전주인 역시 이 문제 때문에 급히 되파신 것이 아닌가 싶다. 기온센서가 있는 녀석이 아닌데 온도에 따라 문이 잘 안 열린다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 코를 열어보기로 했다. 옆의 나사 4개만 풀면 되는 지극히 단순한 조립이다. 명색이 카메란데 이렇게 조립해 놓아도 되나 싶다. 앞코를 열면 랜즈며, 조리개 레버며, 거리조절레버 같은 소위 중요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보신 적이 있는가? 그때랑 똑같다.

 

문제는 커버가 뻑뻑하기도 했지만 바디 아랫부분의 개폐레버와 연동되는 회전링의 구멍과 커버의 핀이 잘못 조립되어 있었다. WD-40을 커버에 조금 뿌려준 후 조심스럽게 결합하니 겨우 열고 닫는데 문제가 없어졌다. 사소한 것이지만 순간 반품을 결심할 정도로 심각했으며 앞코를 열었을 때 느꼈던 그 조악스러움은 놀라운 것이었다. 정상가 242,000원의 산출 근거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일본이나 제3 국에는 과연 얼마에 거래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 아시는 분 없는가?

 

로모의 크기는 생각보다도 작다. 담뱃갑보다 약간 큰 정도이고 무게는 가볍지만 크기에 비해서는 약간의 중량감이 있다. 바디 중 일부에 금속소재를 쓰긴 썼나 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곳은 어디를 보아도 금속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는 앞코는 금속제라고 말하는데 금속의 재질처럼 느낌은 나지만 이 역시 플라스틱이 아닌가 싶다-아니어도 할 수 없지만.

 

외견상의 단순함과 블랙컬러 때문인지 약해 보이지는 않는다. 뒷커버를 열면 셔터가 보이는데 이 역시 플라스틱으로 보인다. 내구성을 기대하긴 조금 무리지 않나 싶다. 필름 감기나 되감기는 수동카메라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으면 별 무리가 없는 단순한 구조이고, 플래시 촬영용으로 조리개 조절 레버가 있는데 쓸 일은 없어 보인다.

 

바디 상부 역시 투박한 플레스틱 질감이다. 특히 필름 되감기 레버는 장난감 같다. 게다가 거리조절레버를 움직이면 랜즈가 앞뒤로 움직여서 초점을 잡는 구조인데 순전히 통빱으로 측거하는 단순무식함(?) 때문에 초점이 제대로 나오는 사진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날씨가 좋으면 심도를 깊게 가져갈 터이니 그럭저럭 볼 만하겠지만 어두운 촬영에서는 피사체 앞뒤에 맞는 초점을 각오해야 한다. 이 역시 로모의 장점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몇 해 전에 경품으로 딸려 온 토이카메라가 생각이 난다. 중국산이었고 온통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필름실 내부는 지금의 로모와 거의 같다. 다른 점은 플래시슈가 없어서 원천적으로 플래시 촬영은 불가하다는 점이다. 나는 이 놈을 자동차에 놓고 만일에 있을 사고 시에 현장 촬영용으로 쓸 요량으로 가지고 다니다 너무 오래되어 현상 한 번 못하고 버려 버린 적이 있다.

 

오늘 로모를 받아 들었을 때 깔끔한 포장 (자세한 설명서, 사진첩, 기타 등등)에 반하고 말았지만 정작 카메라보다는 포장과 분위기조성 쪽에 더욱 애쓰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든다. 더욱이 사진을 찍는 맛은 별로다. 철퍼덕거리는 셔터음에 익숙해 있다가 '틱'하는 매가리 없는 소리에 촬영을 하려 하니 찍는 순간에는 별 감흥이 없다. 자꾸 중국산 장난감 카메라가 생각이 난다.

한 롤을 후루룩 찍고 나서 회사 1층의 현상소에 인화까지 맡겨놓았는데 포기한 사진 찍는 맛보다는 보는 맛이 더욱 클지 자뭇 기대가 있다.

 

쓰다 보니 불평만 늘어놓은 것 같다. 어차피 로모는 새로운 사진세계로의 경험을 위한 것이므로 그 느낌은 차차 후술 하도록 하고 엄청나게 작은 크기 때문에 양복 상의에 넣어도 부담이 없는 휴대전용 카메라로써 로모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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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10.

 

원래 이글루에 이 글을 옮긴 날은 2005.3.14로 되어 있는데 이 어간의 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5~6년 이전에 작성된 내용이 많다. 다행히 본문에 작성일을 기록하고 있어서 제목에 실제 작성했던 날짜를 달 수 있었다.

 

무려 2000년. 한창 사진촬영에 빠져있을 때니 내 출사 구력도 이쯤이면 짱짱하다.

당시 정식 판매채널도 없이 보따리상 같은 사람들이 구해다 소련 KGB용 카메라니 어쩌니 하면서 온갖 포장으로 판매하던 카메라다.  특유의 랜즈의 한계(?) 때문에 핀홀카메라 같은 비네팅과 바랜 듯 한 발색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일본 등지에서 마니아 층이 생겼다는데 얼른 봐도 제값 주고 살 엄두가 선뜻 들지 않는 제품이라 중고로 구입해 잠시 사용해 본 카메라다.

 

결론부터 말하면 애들 장난감. 얼마 후 바로 중고로 넘겼고, 그리 잊혔고 이제는 당연히 조용히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검색해 보니

로모그래피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국내 운영은 아니고 휴대폰 케이스 제작업체 CASETiFY처럼 홍콩에서 한글사이트를 운영하며 홍콩발 선적을 통해 배송해 주는 글로벌 유통구조이다.  허다한 액세서리와 파생카메라들이 생겨났고 레트로 시대에 맞춰 오히려 흥하고 있어 보인다. 세월이 흘러 물가를 생각해야겠지만 가격도 처음 당시의 두 배다.

 

역시.
본질보다는 포장, 기능보다는 감성, 히스토리보다는 그냥 스토리가 먹히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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