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바쁜 회사생활 때문에 맘 놓고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잠시 짬이라도 나면 남들보다 자주 이곳저곳을 떠나 보지만 당일치기가 대부분인 그런 여행들 뿐이다.
바다가 주는 묘한 평안함 때문에 일년에 한두 번은 꼭 바다를 찾지만 대개는 동해이다. 설악산을 중심으로 자주 찾았던 여행지들 덕에 익숙한 데다 동해의 맑은 바다야 말로 진정한 바다를 찾는 이유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결혼 10주년을 빙자한 주말 여행은 하지만 서해 안면도다. 회사 동료의 추천에 의한 것이지만 조개구이와 꽃 박람회로 유명한 안면도에 꼭 한 번은 들러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몰디브'라는 다소 이국적이며 낭만까지 느껴지는 펜션을 예약하고 떠난 금요일 저녁은 벌써 7시를 훨씬 넘어섰다. 이날도 예외 없이 늦은 야근을 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일찍 퇴근한 셈이지만 주말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3시간을 꽉 채워서 도착한 황도-안면도 옆의 또다른 섬이다. 하지만 육지와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이라 볼 수 없는 섬이다-는 동해의 그것과는 달리 아직 너무나 개발이 덜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길이 잘 닦여있는 편이지만 편도 3시간의 여행은 저녁에 출발하는 1박 2일의 여행으론 너무 먼 거리이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팬션 주변은 벌써 적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기사 여름 한 철의 피서철도 아니니 이 시간에 이런 촌에서 11시면 한 밤이라 해도 뭐라 할 것은 아니다. 사실 내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찾아가기도 어려웠을 곳이다. 하지만 저녁을 거른 가족 때문에 식사할 곳을 찾아 20여분을 차를 몰아 꽃지해수욕장까지 나가봤지만 문을 연 변변한 식당이 없다. 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겨우 문을 연 포장마차 스타일의 집에서 그 유명하다던 조개구이를 맛볼 수 있었다.
6살 연하의 남편과 산다는 터프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 맛보는 조개구이 맛이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이것도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신용카드 결재가 안 되는 이 동네의 시스템은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
숙소로 돌아와 쉬려고 하는데 첫 눈에 느낀 시설의 훌륭함에 비해 너무 날림으로 지어진 곳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꽃문양의 실크 벽지와 벽난로-전기로 작동되는 이미테이션이지만-까지 갖춘 곳이지만 쉬 떨어지는 옷걸이 장식이며 금이 가 있는 거실 유리, 옆 방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까지 요란히 들리는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시설-이 층에 묵게 되었는데 그날 따라 월드컵 예선이 새벽 3시에 있는 날이라 단체 여행객들의 늦은 모임 때문에 적잖이 소란스러웠다.- 이곳을 다시 찾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어느 모임에서 단체로 온다던가 한다면 그리 나쁠 것이 없는 곳이긴 하다.
다음 날 아침.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어제 밤 늦게 찾았던 꽃지 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해수욕장이 있었지만 회사 동료에게 유일하게 추천받은 곳이고-다른 곳은 그리 훌륭하지 않다고 한다-밤늦게 보았던 그곳과는 다른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날은 다행히 따스했지만 바닷가의 바람이 매서운 날이다.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해수욕장의 주차장은 어제 밤과는 달리 제법 많은 차들로 가득했고 해수욕장은 학생들로 보이는 여행객들을 중심으로 이곳이 여행지임을 알려 주고 있다. 멀리 할머니, 할아버지로 불리는 두 개의 봉우리를 끼고 해수욕장이 보인다.
너무 늦은 시간에 숙소에서 나온 탓인지 바닷물은 썰물에서 밀물로 바뀌고 있었다.
준비해온 모종삽으로 열심히 바지락을 캐어 보지만 벌써 바닷물이 발까지 따라오고 있어서 서둘러 해변으로 나와야 했고 불과 30여분밖에 바지락 줍기를 하지 못했다. 바지락 10여 개와 이제 막 유충에서 벗어난 꼬마 게 한 마리, 그리고 바닷 소라게 한 마리를 노획물로 잡아들고는 그만 후퇴를 해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송정 꽃게집'-(T.041-673-2666)을 발견하곤 게요리로 점심을 해결했다. 간장게장과 이 집에서 개발했다는 꽃게쌈장을 주문했는데 게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집사람이 크게 만족한 눈치이다.
제법 많은 반찬과 함께 내어 온 게장으로 넉넉한 점심을 한 탓에 그나마 이곳에 찾아온 보람(?)을 찾을 수 있었고 일 인분 2만 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우편으로 배달도 해준다니 한 번 호기를 부려 주문해 볼만도 하겠다.
서울로 돌아오기 바로 전 '안면암'이라는 조계종의 사찰을 찾았다. 기독교도인 우리에게 절이 주는 그리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최근 새로 지은 현대 사찰이라 하고 인근의 섬과 연결된 부교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 비포장 도로를 무릅쓰고 찾아보았다. -수영을 못하는 내게는 바다 위에 떠있는 부교에 올라가 기념사진 하나를 찍기에도 엄두가 안 나는 곳이었다.
어느덧 늘어 난 차량들로 속도를 낼 수 없는 서해대교를 벗어나 역시 3시간을 꼬박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 이렇게 짧게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또 다른 10년을 기다리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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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7
또 다른 10년도 더 훌쩍 넘어서 돌아보니 그 후로도 서해안을 간다 생각하면 안면도를 여러 번 방문했고 우연히 만났던 '송정꽃게집'은 그 후로도 빼먹지 않는 맛집이 되었다.
시절에 따라 그 사이 동네도 바뀌고 새로운 섬들도 차례로 뭍으로 연결되면서 서해안도 과거의 낙후함이 덜어졌지만
이병헌 덕에 이제는 모히또와 헷갈리는 희화화된 이름이 된 '몰디브'가 아직 그 자리에 낭만으로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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